default_setNet1_2

[주홍수의 삼라만상 3] 술 마시고 시를 읽으면 더 취한다

기사승인 2021.03.24  20:00:31

공유
default_news_ad1

- 인사동 네거리의 생맥주집도 그대로구나...청매화 꽃잎 꿈결처럼 날리는, 오늘

   
 

음을 리듬으로 그리고 글로 다시 읽는 시는 운문이다.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지만 시 내용에 들어가 보면 그 세계가 마치 우주처럼 넓고 황홀해진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쓰는 글은 우주로 표현할 만큼 황홀하다. 산문과 달리 시인들은 마치 악보를 쓰는 베토벤처럼 문자를 공중에 둥둥 띄워내 음악으로 만드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대단한 사람들처럼 생각된다.

그동안 매달 시집을 한 권씩 샀는데 단골 서점이 바뀌고 나니 그쪽으로 잘 가질 않는다. 이번주는 시내에 커다란 서점에 털썩 주저앉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 한 줄만 보여도 그 시인을 집으로 데려올 것이다.

새 책 냄새가 나는 대형 서점에 가면 종이 냄새가 마치 대형 펄프를 쌓아 놓은 천장이 높은 창고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든다.

그 기운은 마치 숲속에 나무들이 새벽 짙게 깔린 안개에 묻어 놓은 나무의 향으로 햇볕의 열기에 타들어 말라가며 내주는 향과 닮아있다.

아, 이 밤에 한 잔 취하니 인사동 시가연 쥔장의 낭랑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청매화가 듣고 싶어졌다.

청매화 시 속의 출가한 승려처럼 세속을 연을 끊으니 이제 시 속에 인사동도 옛 말이다. 모두 떠나고 나도 떠날 것이다. 술 마시고 시를 읽으면 더 취한다.

청매화/박규리

다른 길은 없었는가
청매화 꽃잎 속살을 찢고
봄날도 하얗게 일어섰다
그 꽃잎보다 푸르고 눈부신
스물세살 청춘
오늘 짧게 올려 깎은 머리에서
아직 빛나는데
네가 좋아하는 씨드니의 푸른 바다도
인사동 네거리의 생맥주집도 그대로다
그 사람 떠나고 다시 꽃 핀 자리마저 용서했다더니
청매화 꽃잎 꿈결처럼 날리는, 오늘
채 여물지도 않은 솜털들을
야무지게 털어내다니
정말 다른 길 없었느냐
새벽이면 동학사로 떠날
이른 봄 푸른 이끼 같은 아이야
여벌로 더 장만한 안경과
흰 고무신 한 켤레 머리맡에 챙겨놓고 잠든
너의 죄 없는 꿈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다
눈부시도록 추울 앞날을 위해
이 봄날, 떨리는 손으로 투툼한 겨울 내복 두 벌
가방 깊숙이 몰래 넣었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 프로필

   
 

1989~1993 (주)세영 애니메이션 총괄 제작 프로듀서
KBS 옛날 옛적에, 은비까비, 일본 합작 ‘나디아' 제작 프로듀서
1996~1998 미국 할리우드 게임 JOY CINE 총감독
경민대 만화예술과 출강.일요시사 정치삽화 ’탱자가라사대‘ 연재
1998~2001 (주)프레임엔터테인먼트 슈퍼패밀리 원작, 각본, 감독
2001~2004 KBS TV시리즈 날아라 슈퍼보드 스토리보드, 감독
2005~2010 KBS 및 CCTV 중국 전국방영 '도야지봉' 원작 및 총감독. 상하이미디어그룹(SMEG). 상하이 술영화제작소 총감독.
2010 하문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해외심사위원
 중국 SMG 방송 TV 시리즈, ’토끼방’ 기획, 데모제작, 총감독
2014  중국 칼리토와 공동투자 시즌1 ‘판다랑’ 원작, 각본, 총감독 중국 CCTV 한국 MBC
㈜ 선우엔터테인먼트 스페이즈 힙합 덕 총감독
웹툰협회 고문/음원협동조합 이사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ad28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