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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6]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9만개 버그전쟁

기사승인 2018.10.09  05: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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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땀, 픽셀: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6>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피, 땀, 픽셀 : 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6>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미국의 소비자 보호 사이트 컨슈머리스트(Consumerist)는 매년 설문을 통해 ‘미국 최악의 회사’ 한 곳을 뽑는다. 미국 경제가 무너진 2008년에는 AIG의 보험 판매원들이 왕좌에 올랐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컴캐스트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제치고 25만 표를 받은 비디오게임 배급사 일렉트로닉 아츠(EA)가 미국 최악의 회사로 꼽혔다.   

이 굴욕적인 승리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EA 게임에 도입된 ‘소액 결제(microtransaction’)의 부상, 온라인 전용 ‘심시티(SimCity)’ 리부트의 처참한 실패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원인은 EA가 2007년 인수한 바이오웨어에 몹쓸 짓을 했다는 대중의 오해였다.

   
[일렉트로닉 아츠 로고]

■ EA가 2007년 인수한 바이오웨어에 몹쓸 짓을 했다?

EA가 인수한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나서 폐쇄된 블프로그-웨스트우드-오리진 등 유명 스튜디오도 입길에 오르내렸다. 팬들은 바이오웨어가 다음 타자일 것으로 불안에 떨었다.

바이오웨어의 총책임자 에린 플린(Aaryn Flynn)은 훨씬 중요한 도전인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세 번째 편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 게임은 바이오웨어가 지금껏 만든 게임 중 가장 야심찬 작품이 될 것이었다.

바이오웨어가 예전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EA가 바이오웨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았다는 것, 플레이어가 광활한 환경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오픈월드’ RPG를 바이오웨어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사명을 지닌 게임이었다. 하지만, 낯선 신기술을 사용하느라 벌써부터 제작 일정이 밀리고 있었다.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에 사용하기로 한 새 게임 엔진 프로스트바이트(Frostbite)는 스튜디오 직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일손이 훨씬 많이 들어갔다.

“새 엔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피다 보면 신이 나기도 하고 주눅이 들기도 한다.”

플린은 2012년 9월 바이오웨어 블로그에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을 발표하면서 적었다. 어쩌면 그가 보드카를 몇 잔 들이켜고 쓴 글일 수도 있고, EA 홍보 직원들의 반응을 고민하지 않고 쓴 글일 수도 있다. 글 안에는 바이오웨어 직원들의 진짜 속내가 담겼는지도 모른다.

“새 엔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기술 부문에 재난을 일으킬 수 있다.”

   
[게임 엔진 프로스트바이트]

■ ‘드래곤 에이지’ 7년 고생 덕분 팬 열광...후속편에는 싸늘

바이오웨어가 비디오게임계의 ‘반지의 제왕’을 꿈꾸며 ‘드래곤 에이지’ 개발에 착수한 건 2002년이었다. 그리고 2009년 11월, 7년간의 고생 끝에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Dragon Age: Origins)’이 세상에 나왔다.

모든 게이머들이 열광했다. 골수 RPG 팬들은 전략적 전투와 그에 따라 펼쳐지는 가능성에 열광했고, 투덜이 기사 알리스터와 관능적인 마법사 모리건 같은 멋진 파티원을 유혹하는 낭만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은 수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크게 성공했고, 수많은 팬 픽션을 양산했다.  

‘드래곤 에이지’ 개발 팀을 이끈 마크 대러는 1990년대 후반부터 바이오웨어에서 일한 유명한 실력자였다. ‘드래곤 에이지’ 1편 제작에는 7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1년 만에 후속편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대작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힘든 일정이지만, RPG를 만들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은 광활한 네 지역으로 이루어졌고, 지역마다 파벌, 괴물, 퀘스트가 달랐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하면서 내린 결정(캐릭터의 ‘탄생’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에 따라 나머지 줄거리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바이오웨어의 작가와 디자이너 들은 모든 가능성에 부합하는 장면을 개발해야 했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스크린샷]

예를 들어 오즈마 미로 도시에서 추방된 난쟁이 귀족 캐릭터를 플레이하면, 귀환할 때 다른 난쟁이들이 반응을 보인다. 반면 인간 캐릭터를 플레이할 땐 난쟁이들이 그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게임을 1년 만에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2011년 3월에 나온 ‘드래곤 에이지 Ⅱ’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따분한 사이드 퀘스트와 재활용된 환경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한 블로거는 이렇게 적었다.

“전반적으로 말도 안 되게 수준이 떨어진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이 게임을 사라고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AAA급의 뛰어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팀 입증할 ‘엔진’ 모색

‘드래곤 에이지’ 프랜차이즈를 새롭게 바꿔야만 했다. “‘드래곤 에이지’ 팀은 ‘드래곤 에이지 Ⅱ’를 끊어내면서, AAA급의 뛰어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팀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대러는 말을 이었다. “스튜디오 내부에서는 아니었지만 업계에서는 바이오웨어가 ‘매스 이펙트’ 팀과 나머지 사람들로 나뉜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드래곤 에이지’팀은 떨거지라는 시선에 맞서 싸우려는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RPG에는 우리가 갈수록 당연시하는 요소들이 있다. 가게에서 ‘파이널 판타지’ 최신판을 사서 집에 있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플레이한 뒤, 페이스북에 접속해 저장 시스템이 얼마나 훌륭한지 자랑하는 사람은 드물다.

‘폴아웃’ 신작에서 전투 상태와 비전투 상태 사이를 얼마나 수월하게 오갈 수 있는지 설명하는 후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스카이림’이 몇백만 장이나 팔린 것은 플레이어가 보관한 물품을 파악하기 쉬워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당연한 듯 존재하는 요소들은 게임에 꼭 필요하지만 화려하게 돋보이거나 작업 과정이 흥미롭지는 않다. 그래서 게임을 개발할 때 이런 요소들은 보통 게임 엔진이라는 것을 활용해서 만든다.

‘엔진’이라고 하면 자동차 부품이 떠오르겠지만, 게임 개발에서 엔진은 자동차 공장과 같은 존재다. 타이어, 차축, 플러시 가죽 시트 같은 부품은 어떤 신형 차종을 개발하든 똑같이 필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비디오게임에는 물리 시스템, 그래픽 렌더러, 메인 메뉴 등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핵심 요소들이다. 게임 하나를 만들 때마다 그 요소들을 새로 개발하는 것은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할 때마다 바퀴를 새로 발명하는 꼴이다. 그래서 엔진을 사용해 핵심 기능들을 재활용하고 불필요한 작업을 생략한다.

   
[배틀필드1]

■ ‘배틀필드’ 시리즈 개발 EA 소유 프로스트바이트 엔진 ‘구미’

에린 플린과 마크 대러는 ‘드래곤 에이지 Ⅱ’를 완성하기 전부터 후속편 제작에 쓸 새 엔진을 찾고 있었다. 플린과 대러는 그들의 상사인 EA의 임원 파트리크 쇠델룬드(Patrick Söderlund)와 논의한 끝에 해결책을 가져왔다.

EA가 소유한 스웨덴 스튜디오 다이스DICE가 ‘배틀필드’ 시리즈 개발에 사용한 프로스트바이트라는 엔진이었다. 프로스트바이트로 RPG를 만들었다는 사람은 본 적 없었지만 플린과 대러는 몇몇 부분에서 구미가 당겼다.

우선 성능이 좋았다. 다이스는 프로스트바이트의 그래픽 성능 개발을 전담하는 엔지니어 팀을 두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등의 시각 효과를 보강하는 작업을 했다. 비디오게임 업계이다 보니 폭파 장면을 예쁘게 다듬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프로스트바이트의 다른 큰 강점은 EA 소유라는 것이었다. 모든 게임을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으로 개발하면 자매 스튜디오들과 기술을 공유하며 비서럴Visceral(<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크리테리온Criterion(<니드 포 스피드Need for Speed>) 같은 EA 소유 개발사들이 얼굴을 더 실감 나게 표현하거나 폭파 장면을 더 예쁘게 다듬기 위해 만든 툴을 빌려 쓸 수 있었다.

의욕이 넘쳤다. 바이오웨어 최초의 3D 오픈월드 게임이자 RPG 게임 제작에 한 번도 쓰인 적 없는 프로스트바이트로 만드는 첫 게임이었다. 대략 2년 안에 다섯 가지 플랫폼 버전을 내놓고 땅에 떨어진 스튜디오의 명성을 되찾는 데 일조해야 했다.

   
 

■ 2014년 내내 철야 버그 9만9000개 잡고 시리즈 최고 인기

엔진이 자동차 공장이라면, 2012년 ‘인퀴지션’ 개발이 시작될 때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은 정식 조립 라인이 없는 자동차 공장이었다.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이전에 EA의 개발사들이 프로스트바이트로 만든 게임은 ‘배틀필드’와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 같은 1인칭 슈팅 장르였다.

프로스트바이트를 개발한 엔지니어들은 플레이어가 주요 캐릭터를 볼 수 있는 툴을 개발한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1인칭 슈팅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눈을 통해 화면을 본다. 플레이어의 몸은 육신에서 떨어져 나온 손과 총으로 이루어졌고, 간혹 다리도 달렸다. ‘배틀필드’에는 RPG의 스탯, 마법 주문, 심지어는 저장 시스템도 필요 없었다. 자동 체크포인트를 통해 게임 진행 상황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스트바이트로는 이런 요소를 전혀 만들 수 없었다.

대러와 팀원들은 자신들이 프로스트바이트의 실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기적 이익을 위해 감수하는 단기적 고통이라고는 해도,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개발 초기에는 아주 기초적인 작업마저 극한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프로스트바이트에는 아직 RPG 제작에 필요한 툴이 없었다.

줄거리와 게임플레이 팀을 이끈 마이크 레이들로는 작가, 디자이너 들과 함께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의 기본 틀을 구상했다. 줄거리를 짜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의 콘셉트가 ‘오픈월드’ 게임이었기에 레이들로와 팀원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아트 팀이 끝없이 생성되는 풍경을 모두 만들긴 했지만, 그 풍경 안에서 플레이어는 뭘 해야 한단 말인가?

2012년 말의 어느 날, 1년 동안 험난한 ‘인퀴지션’ 개발을 진행한 마크 대러는 마이크 레이들로에게 점심을 제안했다. “그의 차를 타러 같이 걸어가고 있었어요.” 레이들로는 당시를 떠올렸다. “저는 그가 대본에 대해 생각해둔 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러더군요. ‘사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 그냥 얘기할게요. 1점부터 세계의 종말까지 놓고 점수를 매긴다고 할 때… 플레이어가, 글쎄요, 쿠나리족 심판관이라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날까요?”

   
 

레이들로는 어리둥절했다. 이미 ‘인퀴지션’에서 플레이어는 인간 캐릭터만 플레이할 수 있다고 정해놓았다. 대러의 요청대로 뿔 달린 쿠나리족 같은 다른 종족을 플레이할 수 있게 추가하려면 애니메이션, 성우, 대본에 들어갈 예산을 네 배로 늘려야 했다.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그러면서 레이들로는 대러에게 대화를 만들 예산을 추가할 수 있을지 물었다.

레이들로가 플레이 가능한 종족을 추가할 수 있게 해준다면 대화만이 아니라 제작 일정을 1년 정도 늘릴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레이들로는 신이 났다. “까짓것, 그럽시다.”

2014년 내내 철야를 소화하면서 개발 첫해에 막혀 있었던 요소(버그가 9만9000개)들을 마침내 마무리했다. ‘인쿼지션’은 출시되자마자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몇 주만에 EA의 판매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바이오웨어에게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은 프로스트파이트가 야기한 온갖 고난을 뚫고 승리한 것을 의미했다.

* 이 글은 『피, 땀, 픽셀』(한빛미디어, 2018)의 일부를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글쓴이 제이슨 슈라이어

필자 제이슨 슈라이어는 게임 웹진 '코타쿠'의 뉴스 에디터다. 베일에 가려진 게임 업계의 냉혹하고 다양한 주제를 끈질기게 취재하며 명성을 쌓았다.

'코타쿠' 전에는 '와이어드'에서 게임 칼럼을 썼으며, 그 밖에도 뉴욕 타임스, 에지, 페이스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왔다.

역자 권혜정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테트리스 이펙트'(한빛미디어, 2018), '이기적 진실', '뮤지엄, 뮤지엄'(이상 비즈앤비즈), '예술 속 문양의 세계'(시그마북스) 등이 있다.

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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