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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2] 언차티드 4: 사상 최악의 크런치 모드

기사승인 2018.09.14  07: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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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땀, 픽셀 : 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 언차티드 4

   
[<언차티드: 네이선 드레이크 컬렉션> 스크린샷]

‘피, 땀, 픽셀 : 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 언차티드 4

예술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비디오게임은 창작자를 비추는 거울이다. ‘젤다의 전설Legend of Aelda’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어린 시절 동굴을 탐험했던 추억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둠Doom’은 존 로메로와 존 카맥이 ‘던전 앤 드래곤’을 하면서 만든 가상 세계에 악마들을 잔뜩 풀어놓으면서 탄생했다.

그리고 ‘인디아나존스’류 액션 모험 시리즈의 마지막 주자로 악동 기질이 다분한 네이선 드레이크가 주인공인 ‘언차티드 4Uncharted 4’는 일에 미쳐 살아온 남자의 이야기다.

‘언차티드’를 개발한 스튜디오 너티 독은 수염이 까칠하게 자란 게임의 주인공 네이선 드레이크와 닮은 구석이 많다. 너티 독은 게임 업계에서 두 가지 이유로 명성을 날린다.

첫째는 직원들의 기가 막힌 실력이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며 황홀경 같은 게임을 만들어내는 너티 독을 보며, 경쟁사들은 이들이 흑마술이라도 부리는 건 아닌지 궁금해했다.

두 번째 명성은 악명 높은 크런치 타임(Crunch Time, 게임 완성을 위해 마감 때 고강도 근무, 갈아먹는 비유)이었다. ‘언차티드’와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만드는 동안, 너티 독 직원들은 큰 마감이 닥칠 때마다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을 밥 먹듯 했다. 크런치 타임이 없는 게임 스튜디오는 없다지만, 너티 독만큼 혼신의 힘을 다하는 곳도 흔치 않다.

혹자는 앞서 ‘언차티드’ 세 편을 만들면서 쌓은 경험과 연륜이 있으니 4편 제작은 식은 죽 먹기였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디렉터 교체, 전면적인 수정, 촉박한 일정, 몇 달간 이어진 크런치 모드 탓에 ‘언차티드 4’ 제작은 킬리만자로산을 오르는 것처럼 험난한 여정이었다. ‘언차티드’ 시리즈에는, ‘네이선 드레이크가 뛰어내리는 지붕이나 절벽은 무조건 무너진다’는 농담이 있었다. ‘언차티드 4’ 개발이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에는 너티 독 직원들 모두가 이 말에 공감했다.

‘언차티드’ 1편을 만든 건 너티 독으로서 이례적인 행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제이슨 루빈Jason Rubin과 앤디 개빈Andy Gavin이 1984년에 설립한 너티 독은 근 20년 동안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대표 게임이 된 ‘크래쉬 밴디쿳’과 ‘잭 & 덱스터Jak & Daxter’ 같은 플랫폼 게임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2001년에 소니가 너티 독을 인수하고, 몇 년 뒤 새로 나올 플레이스테이션 3에 들어갈 게임 개발을 맡겼다.

베테랑 디렉터 에이미 헤닉Amy Hennig의 지휘 아래, 너티 독은 이전까지 해본 적 없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무모한 장난을 치는 ‘인디아나 존스’에서 영감을 얻은 저속한 모험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네이선 드레이크를 조종하여 전 세계를 누비며 보물을 찾고 퍼즐을 맞춘다.

작업이 유독 순탄치 않을 때면 아트 디렉터 브루스 스트랠리Bruce Straley는 디자인 부서에 가서 동료들과 서로 불평을 토로했다. 1990년대부터 게임을 만들어온 스트랠리는 ‘언차티드’를 개발하면서 쌓인 불만을 배출할 통로가 필요했다. 이내 그는 디자이너 몇 명과 주기적으로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20대 직원 닐 드러크먼도 있었다.

인턴 프로그래머로 너티 독에 입사한 지 2년밖에 안 되었던 그는 짙은 머리칼과 올리브톤 피부에 완고한 성격이었으며, 당시 스토리텔링 부문을 책임지는 너티 독의 샛별이었다. ‘언차티드’에는 디자이너로서만 이름을 올렸지만, 헤닉이 스크립트 집필을 마무리할 때에도 도움을 주었다.

스트랠리와 드러크먼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디자인 아이디어를 나누고 사내 정치로 힘들 때 서로를 다독여주는가 하면, 서로 플레이하는 게임을 분석하며 레벨 조합 방식을 연구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게임을 시작하면서 계속 대화를 나누고,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까지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스트랠리는 “그렇게 하면서 업무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차티드 4’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팀을 이원화해 게임 2종을 동시에 개발하는 스튜디오가 되자는 너티 독의 비전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팀이 ‘언차티드 4’ 개발자들을 자꾸 데려가는 바람에 헤닉의 팀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필요한 직원을 모두 갖춘 온전한 두 팀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너티 독의 공동 사장 에번 웰스Evan Wells는 말했다. “두 팀이 서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게임 규모가 확장되면서 필요한 인재들을 제때 충분히 채용할 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1과 1/2 내지는 1과 1/4개의 팀을 이룰 수 있었죠.”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스크린샷]

닐 드러크먼과 브루스 스트랠리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확장팩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를 마무리한 2014년 초, 너티 독은 비상 모드에 돌입해 ‘언차티드 4’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회의를 몇 차례 소집했다.

그다음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회사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레프트 비하인드’에만 신경을 쏟아 ‘언차티드 4’ 팀은 생존에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에이미 헤닉이 의사 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개발 초기부터 진행이 순탄치 않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언차티드 4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는 방향 제시에 일관성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언차티드 4‘ 팀에 인원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생각하면 게임에 일관된 방향이 없는 게 당연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2014년 3월, 에이미 헤닉은 너티 독의 공동 사장 웰스와 크리스토프 발레스트라Christophe Balestra와 면담을 한 뒤 스튜디오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차티드 4‘는 이미 2년 가까이 개발이 진행된 상태였지만 스트랠리와 드러크먼이 헤닉의 작업물을 워낙 많이 갈아엎어서 아예 새 게임을 만드는 기분이었다. “버거웠습니다.” 스트랠리는 말했다. “이미 만들어놓은 것은 활용할 수 없었어요. 문제가 있는 요소들이었으니까요. 게임플레이와 줄거리 모두 문제가 많아서 양쪽 다 할 일이 태산이었습니다. 이걸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싶은 비상사태였고,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였어요. ’더 라스트 오브 어스‘로 탈진한 상태에서 크런치 모드에 돌입한 거죠.”

게임 프로젝트는 보통 한 명이 이끌어간다. 직함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조시 소여)가 될 수도 있고 ‘책임 프로듀서’(6장에서 만날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의 마크 대러Mark Darrah)가 될 수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최종 결정을 내리는 존재다. 창작 면에서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모든 책임을 여성이나 남성 한 명이 지는 것이다(비디오게임 업계에서는 애석하게도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드러크먼과 스트랠리는 예외였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언차티드 4’에서 두 사람은 공동 디렉터로 나서며 흔히 볼 수 없는 원동력을 일으켰다. 이들은 서로를 잘 보완했다. 드러크먼은 대화를 쓰고 배우들과 함께 일하기를 좋아했고, 스트랠리는 주로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을 다듬는 팀원들을 도왔다. 물론 욕심 많고 창의적이며 최고를 지향하는 인물 둘이 만나면 으레 그렇듯, 이들도 옥신각신할 때가 있었다. “마치 부부 같았죠.” 드러크먼은 덧붙였다. “드레이크와 엘레나처럼 말이죠. 누가 드레이크고 누가 엘레나였냐고요? 제가 엘레나였던 것 같네요.”

시험판은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시작된다. 드레이크와 설리는 총격전에 말려들었다가 용병 몇 명을 사살한 다음 장갑차에서 도망친다. 이들은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근처에 세워둔 자동차로 향한다. 이는 너티 독이 팬들에게 새 메커니즘을 뽐낼 기회였다. “와, ‘언차티드’에 자동차가 생겼어!”

   
[<언차티드 4> E3 시험판, https://youtu.be/zL46dpNEPPA]

너티 독 직원들은 E3에서 쏟아진 긍정적인 반응에 다시 한번 기운을 얻어 이후 몇 달을 버텼다. 2015년 7월에는 ‘언차티드 4’ 제작진 전체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 게임쇼 E3가 열리기 전 몇 주는 철야와 주말 근무로 정신이 없었고, 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대부분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마무리로 크런치 모드에 있다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언차티드’를 위한 크런치 모드에 돌입했다.

스트랠리는 로스앤젤레스 동부에 살았기 때문에 산타모니카에 있는 너티 독 사무실에 출근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언차티드 4’의 크런치 기간에 그는 아침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새벽 2~3시까지 야근을 하고 싶었지만 운전을 하며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에 사무실 근처에 아파트를 빌렸다. 평일에는 그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갔다. “목숨이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가깝고 교통 체증 없이 일찍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에릭 팡길리난의 해결책은, 매일 야근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보통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대신, 주말에는 무조건 일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이 규칙을 엄수합니다.” 프로젝트를 위해 건강과 안녕을 포기한 이들도 있다.

너티 독 디자이너 한 명은 트위터에서, ‘언차티드 4’의 마지막 크런치 기간에 7킬로그램이 불었다고 밝혔다. 2015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게임을 영영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한 이들도 있었다.

 “막판 크런치는 지금까지 우리가 거쳐온 크런치 중에서도 최악이었을 겁니다.” 에밀리아 샤츠는 말했다. “몸이 말이 아니었어요. 강도 높은 크런치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은 처음이었거든요. ‘언차티드 4’가 끝나갈 무렵 복도에서 사람들을 보면 다들 이런 말을 하는 얼굴이었어요. ‘우리가 도대체 이걸 어떻게 완성하려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안 될 것 같은데.’”
 
2016년 5월 10일, 게임이 출시됐다. ‘언차티드 4’는 일주일 만에 270만 장이 팔리며 극찬을 받았고, 그 당시 존재하는 실사 게임 중 독보적인 생생함을 자랑했다. 그 후로 몇 달 동안 지칠 대로 지친 개발자 몇 명이 너티 독을 떠났다. 나머지는 장기 휴가를 내거나 다음에 있을 두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했다.

‘언차티드 4’ 말미에, 리버탈리아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네이선과 엘레나는 인생에 약간의 모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맞출 방안이 있는지도 몰랐다. 엘레나는 네이선이 일하는 인양 회사를 사들이며, 둘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설명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경험은 빼고 말이다. 이제부터 그들은 훨씬 합법적인 범위에서 공예품을 사냥할 것이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 네이선이 말한다. 엘레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한다. “의미 있는 일이 다 그렇지.”

* 이 글은 『피, 땀, 픽셀』(한빛미디어, 2018)의 일부를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글쓴이

필자는 제이슨 슈라이어는 게임 웹진 '코타쿠'의 뉴스 에디터다. 베일에 가려진 게임 업계의 냉혹하고 다양한 주제를 끈질기게 취재하며 명성을 쌓았다. '코타쿠' 전에는 '와이어드'에서 게임 칼럼을 썼으며, 그 밖에도 뉴욕 타임스, 에지, 페이스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왔다.

역자 권혜정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테트리스 이펙트'(한빛미디어, 2018), '이기적 진실', '뮤지엄, 뮤지엄'(이상 비즈앤비즈), '예술 속 문양의 세계'(시그마북스) 등이 있다.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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