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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1]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크라우드펀딩으로 지옥탈출

기사승인 2018.09.07  07: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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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땀, 픽셀 : 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피, 땀, 픽셀 : 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비디오게임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비디오게임 제작과 아무 관련이 없다. 수 세기 동안 예술가들을 괴롭히고 셀 수 없이 많은 창작열을 꺾은 단순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이걸 무슨 돈으로 만들지?

2012년 초, 퍼거스 우르크하트Feargus Urquhart는 이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CEO로 있는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는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있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게임 스튜디오로, 당시에는 몇 년 동안 <스톰랜즈Stormlands>라는 RPG를 개발해온 상태였다. 옵시디언이 지금까지 만들어본 적 없는 게임이었다. 기괴하고, 야심 차고, 무엇보다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출시를 앞두고 있던 엑스박스 원 콘솔에 독점 제공할 방대한 규모의 RPG를 원했다. 옵시디언은 직원을 115명까지 두었는데, 그중 50명가량을 이 게임에 투입했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돈을 계속 보내주기만 한다면.

우르크하트는 가느다란 밝은 갈색 머리칼에 몸이 다부지다. 말이 빠르고, 수십 년 동안 게임 피치를 하고 다닌 사람답게 말투가 권위적이었다. 과거에 그는 <폴아웃Fallout>, <발더스 게이트Baldur’s Gate> 같은 인기 절정의 RPG 제작에 참여했다. 행사 패널로 초청받거나 언론 인터뷰에 응할 때 항상 독립 스튜디오 운영의 고충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독립 개발자로 산다는 건, 매일 아침 일어나 우리가 만드는 게임의 제작 계획을 배급사에서 취소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르크하트는 말했다. “차라리 제가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였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언제 목이 잘릴지 모른다는 현실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 있잖아요. 하지만 전 그렇지 않아요. 그런 개발자는 별로 없을걸요. 안타깝게도 그런 위협은 늘 우리 주변에서 목 끝에 칼날을 들이대곤 하죠. 항상 그래요.”

   
[스팀 <발더스 게이트: 인핸스트 에디션> 스크린샷]

2012년 3월 12일 아침, 우르크하트의 휴대폰이 울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톰랜즈> 프로듀서가 통화를 할 수 있겠냐고 묻는 문자였다. 문자를 보자마자 앞으로 닥칠 일이 눈앞에 선했다. “이별을 결심한 여자 친구에게서 온 문자 같은 거죠.” 우르크하트는 말했다. “무슨 말을 들을지 알면서도 전화를 걸어야 하죠.”

마이크로소프트 측 담당자는 <스톰랜즈> 제작이 취소됐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옵시디언 직원 50명의 일거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우르크하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톰랜즈> 제작을 취소해서 옵시디언에 정리해고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삼켰다. 직원들은 누가 짐을 싸게 될지 궁금해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들은 해고 대상자에게 줄 퇴직금을 정산하는 경영진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서류철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가방을 싸라고 알려줬죠.”

그날 오후, 회사는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옵시디언은 <스톰랜즈> 제작진 스물여섯 명을 잘랐고, 그중에는 바로 전날 입사한 직원도 있었다. 이들이 잘린 건 경쟁력이 없거나 무능해서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사랑스러운 동료들이었다. “정말 끔찍했죠.” <스톰랜즈>의 디렉터이었던 조시 소여Josh Sawyer가 말했다. “처참했어요. 제가 일하면서 겪은 최악의 사건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본 정리해고 중 최대 규모였습니다.”

2003년에 설립된 옵시디언은 직원들이 프리랜서 일로 현상 유지를 해가며 계약을 따내 회사를 키우고 독립 스튜디오로 자리 잡았다. 게임 제작이 잔인하게 취소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세가 게임스가 배급하려던 RPG <에일리언: 크루서블Aliens: Crucible>이 엎어졌을 때도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감행했지만 이렇게 상처가 크진 않았다. 퍼거스 우르크하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로부터 근 10년이 지나, 옵시디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게 끝이었을까?

옵시디언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무렵, 북쪽으로 640킬로미터 떨어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더블파인Double Fine이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었다. 저명한 디자이너 팀 샤퍼Tim Schafer가 이끄는 독립 스튜디오 더블파인은 비디오게임 산업에 파란을 일으킬 새로운 게임 제작 방식을 찾아냈다.

수십 년 동안 비디오게임 업계에는 단편적인 힘의 균형이 존재했다. 개발사는 게임을 만든다. 배급사는 개발사에 돈을 지불한다. 물론 벤처 투자자, 로또 당첨자 같은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자금이 넉넉한 대형 배급사가 스튜디오에 제작비를 지급했다. 배급사는 협상에서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가혹한 거래 조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RPG <폴아웃: 뉴 베가스Fallout: New Vegas>를 예로 들면, 배급사 베데스다는 이 게임이 메타크리틱에서 85점 이상을 받으면(100점 만점) 100만 달러를 보너스로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후기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메타크리틱 점수는 오르내림을 거듭한 끝에 84점에 고정되었다(그리고 보너스는 물거품이 되었다).

원래 옵시디언이나 더블파인 같은 독립 스튜디오가 명맥을 이어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투자자를 찾거나, (2) 배급사와 게임 제작 계약을 맺거나, (3) 방금 소개한 두 방법으로 모은 활동 자금을 털어 자체 비디오게임을 만든다. 그러나 규모가 있는 독립 스튜디오 중 부분적으로라도 외부 협력사의 자금에 기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없었기 때문에 제작 취소, 정리해고, 부당 거래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블파인은 킥스타터라는 네 번째 길을 찾아냈다. 킥스타터는 2009년에 생긴 ‘크라우드펀딩’ 웹사이트다. 이 웹사이트에서는 창작자가 팬들에게 직접 투자 제안을 한다. 저희에게 돈을 주시면, 멋진 무언가를 드리겠습니다. 킥스타터 설립 초기에는 몇천 달러 정도를 모아서 단편영화를 찍거나 깔끔한 접이식 탁자를 만드는 아마추어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2011년부터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더니, 2012년 2월에는 더블파인이 킥스타터에서 <더블 파인 어드벤처Double Fine Adventure>라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 제작에 착수했다.

이 게임은 그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전까지 킥스타터는 10만 달러를 넘기면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더블파인은 24시간 만에 100만 달러를 모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톰랜즈> 제작을 취소한 2012년 3월, 더블파인은 후원자 8만 7142명으로부터 330만 달러를 모으면서 킥스타터 모금을 종료했다. 그때까지 다른 비디오게임들이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액수의 10배가 넘었다. 옵시디언의 직원은 일제히 이 성공에 주목했다.

   
[킥스타터 <더블 파인 어드벤처> 페이지]

<더블 파인 어드벤처>처럼 대박을 친 프로젝트들 덕분에 킥스타터는 옵시디언까지 술렁이게 했다. 크라우드펀딩 도전을 적극 찬성하는 직원들 중에는 최고 실력의 베테랑인 애덤 브레네케와 조시 소여도 있었다. <스톰랜즈>에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던 브레네케, 디렉터로 참여했던 소여는 킥스타터가 옵시디언처럼 배급사에 의존하는 스튜디오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브레네케와 소여는 회의 내내 <더블 파인 어드벤처>를 들먹였다. 팀 샤퍼가 330만 달러를 모았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게 있을까?

2012년 9월 14일 금요일, 옵시디언 직원들은 애덤 브레네케의 자리에 모여 시곗바늘이 10시 정각을 가리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전 브레네케에게 ‘캠페인에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빨간색 글씨의 커다란 경고문이 날아오는 바람에 겁에 질렸다가 킥스타터 본사에 전화를 걸어 아슬아슬하게 문제를 해결한 참이었다. 10시 정각이 되자, 브레네케는 개시 버튼을 눌렀다. 페이지가 떴을 때 모금액은 이미 800달러에 달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브레네케는 새로고침을 눌렀다. 이번에는 2700달러를 넘겼다. 다시 5천 달러를 넘겼다. 그렇게 1분 만에 만 단위를 넘겼다.

그날, 2012년 9월 14일,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은 게임 개발 스튜디오처럼 보이지 않았다. 게임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들 키보드의 F5 버튼만 부서져라 누르며 <프로젝트 이터니티> 킥스타터 모금액이 매분 수천 달러씩 올라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퍼거스 우르크하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직원들을 길 건너 식당 ‘데이브앤버스터’로 데려가 맥주를 시켰다. 저마다 조용히 휴대폰만 바라보며 킥스타터에서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었다. 그날 밤, 모금액은 7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5년 3월 26일, 옵시디언은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를 출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요 몇 년간 컴퓨터로 해본 RPG 중 가장 매력적이고 만족스럽다.” 킥스타터 후원자를 제외하고,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출시 첫해에 70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가며 회사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고 바로 후속편을 만들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임했기 때문에 더욱 멋진 프로젝트였죠.” 저스틴 벨은 말했다. “<스톰랜즈> 사건도 한몫했고요. 옵시디언의 역사에 남을 비극의 잿더미에서 피어오른 것입니다. 모두가 최대한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넘쳐흘렀고, 자발적으로 힘을 모았습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스크린샷]

600만 달러도 안 되는 예산으로, 옵시디언은 2015년 최고의 RPG 하나를 만들어냈다. 옵시디언에 몇 개의 상패는 물론 독립 스튜디오로서의 미래까지 안겨준 게임이었다. 옵시디언은 마침내 파산의 위기를 모면하고 저작권과 로열티를 대형 배급사에 넘겨주는 대신 직접 소유하게 되었다(홍보와 유통, 현지화를 맡은 패러독스는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소유하지 않았다). 팀원들이 코스타메사 나이트클럽에서 화려한 출시 파티를 열고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우르크하트는 청중들에게 자랑스럽고도 후련한 마음을 표현했다.

불과 3년 전에 그는 수십 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지만, 이제 직원들은 축배를 들고 있다. 도박은 적중했다. 그들은 이겼다. 몇 년 동안 불투명한 현실과 싸우며 다른 회사들에 의존해왔지만, 마침내 옵시디언은 자립의 길을 닦았다.

* 이 글은 '피, 땀, 픽셀'(한빛미디어)의 일부를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글쓴이

필자는 제이슨 슈라이어는 게임 웹진 '코타쿠'의 뉴스 에디터다. 베일에 가려진 게임 업계의 냉혹하고 다양한 주제를 끈질기게 취재하며 명성을 쌓았다. '코타쿠' 전에는 '와이어드'에서 게임 칼럼을 썼으며, 그 밖에도 뉴욕 타임스, 에지, 페이스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왔다.

역자 권혜정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테트리스 이펙트'(한빛미디어, 2018), '이기적 진실', '뮤지엄, 뮤지엄'(이상 비즈앤비즈), '예술 속 문양의 세계'(시그마북스) 등이 있다.

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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